탱크 1대 없이 맞이한 1950년, 2019년은?

[더구루=홍성일 기자] 6월 6일.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날이다. 

 

무엇보다 한반도를 적화통일하겠다는 김일성의 야욕 앞에 많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영혼들이 총을 들어야 했고 죽음을 맞이했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4시.

 

기습적인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우리 국군은 14만 7039명이 전사했고 민간인도 99만 1068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생면부지의 땅에서 숨져간 UN군이 3만 5737명이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전쟁이 시작됐을 때 우리 국군은 말그대로 총한자루를 들고 200여대의 탱크로 무장한 북한군을 막아야만 했다. 

 

◇탱크도 0, 전투기도 0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과 북한 인민국의 무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당시 북한군의 육군은 지상군과 지원 및 특수부대를 합치면 18만 2600여명이었고 한국군은 9만 4900여명에 불과했다.    

 

해군에서는 한국군이 3개정대, 7개 경비부를 합쳐 7715명이었고 해병대도 2개 대대 1166명에 불과했다. 인민군은 3개 위수사령부 4700여명에 육전대가 9000여명이었다. 

 

공군의 경우 한국군은 1개 비행단, 7개기지에 1879명, 인민군은 1개 비행사단 2000여명의 병력을 확보했다.

 

전체 병력의 수가 두배의 차이가 벌어져있었던 것이다.

 

무장은 더 차이가 컸다. 

 

지상군을 봤을때 국군은 27대의 장갑차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탱크는 물론 자주포도 1대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인민군은 85mm포를 장착한 소련제 T-34 탱크 242대, 장갑차는 54대, SU-76 자주포 176문을 갖춰 한국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에 압도적인 화력을 갖췄었다. 

 

곡사포의 경우에도 인민군의 122mm 곡사포가 국군의 105mm 곡사포보다 사거리도 길었을 뿐 아니라 176문으로 91문에 불과했던 105mm 곡사포보다 많았다. 

 

공군의 경우에도 인민군이 YAK-9, IL-2 전투기 및 연습기, 정찰기 총 211대를 보여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국군은 L-4 연락기 8대, L-5 연락기 4대, AT-6 연습기 10대만을 가지고 있었다. 

 

차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의 도움으로 빈약한 무장을 채워나가지만 전쟁이 시작될 당시에는 조악돌을 들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사람에게 달려드는 듯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19년의 한국군과 북한군 

 

2019년 1월 18일 갱신된 통계청의 자료를 통해 현재의 남북한의 군사력을 숫자로 비교하며 69년 전보다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한국군의 육군은 46만 4000여명이며 북한군은 110만여명이다. 해군은 한국군이 해병대 2만9000여명을 포함해 7만여명이고 북한군은 6만여명으로 확인된다. 

 

공군은 한국군 6만5000여명, 북한군은 11만여명이다. 여기에 북한군은 추가로 전략군이 1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한국군은 총 59만9000여명의 상비군을 갖추고 있으며 북한군은 128만여명의 상비군을 갖추고 있다. 

 

69년전과 달리 현재의 한국군은 다양한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한국군의 전자 2300여대, 장갑차 2800여대, 야포(견인포, 자주포) 5800여문, 다련장로켓 200여문, 지대지유도무기 60여 기, 공격헬기 112대 이상을 가지고 있고 북한국은 탱크 4300여대, 장갑차 2500여대, 야포(견인포, 자주포) 8600여대, 방사포 5500여문, 지대지 유도무기 100여기, 공격헬기 20여대로 무장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여전히 북한군이 월등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제 전력과 숫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군의 경우 3세대 이상의 전차를 1600여대 이상 보유하고 있지만 북한군은 3세대 탱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국군은 1세대 탱크들을 퇴역시키고 최신 전차들을 꾸준히 배치할 것으로 알려져 이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포병전력에서도 북한군의 포병 전력은 준비시간이 길고 신뢰도도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군의 K-9자주포는 세계 최고의 자주포로 불린다. 

 

여기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항공전력이다. 한국 육군이 보유한 헬기전력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헬기가 뜬 이상 지상군은 초토화될 수 밖에 없다. 

 

해군의 경우 한국군은 전투함정 100여척, 상륙함정 10여척, 기뢰전함정 10여척, 지원함정 20여척, 잠수함정 10여척으로 구성됐다. 

 

반면 북한군은 전투함정 430여척, 상륙함정 250여척, 기뢰전함정 20여척, 지원함정 40여척, 잠수함정 70여척으로 확인된다. 

 

이 또한 척수는 북한군이 많지만 배수량과 무장, 레이더 기술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 해군의 주력 전투함은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등인데 반해 북한 해군은 1500톤급 나진급 호위함, 200톤 정도의 해삼급 고속정이 주 전력으로 알려졌다. 

 

공군은 북한조차도 그 격차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 공군은 410여대의 전투임무기, 70여대의 정찰·감시통제기, 50여대 공중기동기 등을 갖추고 있다. 

 

북한 공군은 전투임무기 810여대, 정착·감시통제기 30여 대, 공중기동기 340여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F-35, F-15K,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을 보유한 한국 공군을 북한 공군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산화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할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50년이나 2019년이나 변하지 않은 것

 

1950년과 2019년, 한국 국군은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 국군은 전쟁을 할 수 없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1950년 7월 14일 한국 국군의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이 유엔군으로 이양됐다. 

 

그리고 44년이 지난 지난 1994년 12월 1일 평시작전통제권을 되찾아온다. 이후 전시작전통제권도 찾아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참여정부 시절 2012년 4월 17일 전시작전권을 회수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하지만 2010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2015년으로 연기된 이후 2014년에는 2020년대 중반에 전환 여부를 검토한다고 합의하며 무기한 연기됐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겠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은 주권 국가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킬만큼 한국 국군도 강해졌다. 

이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2009년 9월 한국 국방부는 오로지 한국군과 북한군이 전면전을 하더라도 현역군인 만으로도 승리한다는 보고서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한바 있다. 

 

또한 외교적인 부분에서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더욱 주체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일본 자위대마저도 전시작전통제권은 일본 정부가 가지고 있다. 

 

앞으로 이 사안이 어떻게 진행될 지 또다시 보수진영의 반대에 막혀 찾아오지 못하게 될지 관심있게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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